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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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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글쓴이
조대신문
평범한 시골 마을은 왜 끔찍한 ‘암 마을’이 됐는가 <1117호 사회부기획>

평범한 시골 마을은 왜 끔찍한 ‘암 마을’이 됐는가
발암물질 내뿜는 공장, 행정당국의 외면으로 시작된 마을의 비극

 

평화롭던 한 시골 마을,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이 이야기는 전북 익산의 장점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주민 97명 중, 최소 22명이 암에 걸렸고 14명이 사망에 이르렀다. 주민 5명 중 1명이 암에 걸린 꼴이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달 14일 ‘주민 건강 영향조사 최종 발표회’에서 장점마을 주민들의 집단 암 발생과 사망이 인근 비료공장에서 배출된 발암물질 때문임을 공식 발표했다. 사건 초기에는 비료공장과 암 발병 사이의 정확한 인과관계를 밝혀내기 어렵다며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최종 발표에서는 역학적 관련성까지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정부에 피해구제를 신청하지 않고 해당 공장에 발암물질인 연초박(담배 찌꺼기)을 납품한 KT&G와 환경부, 익산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비극의 시작
비극은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1년, 마을에서 500m 떨어진 ‘금강농산’이라는 비료공장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금강농산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은 주로 악취였다. 이와 관련한 첫 민원은 2010년으로 돌아간다. 뉴스원의 취재에 따르면 그해 9월 20일, ‘마을 저수지의 물고기가 집단폐사 했는데 현재까지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민원이 접수됐고, 익산시 공무원들은 곧바로 현장을 찾았다. 저수지 주변에선 시궁창 냄새가 나고 물은 흑갈색을 띠었지만, 익산시는 ‘문제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상황을 모면했다. 주민들의 민원은 해를 거듭하며 쌓여갔고, 그들은 계속해서 항의했으나 익산시는 외면했다. 심지어는 업무 방해로 주민들을 잡아가는 일도 있었다.


계속된 외면은 참담한 결과를 불러왔다. 장점마을에서 암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 한 해에만 마을주민 10명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렇지 않은 주민들은 피부병에 시달렸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피가 날 정도로 피부를 긁으며 잠 못 자는 이들이 여럿이었고, 부부가 하루에 죽고, 부자가 함께 암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마을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익산시는 ‘금강농산이 퇴비로만 사용해야 하는 연초박을 유기질 비료 원료로 썼다’는 폐기물 실적 보고를 받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결국,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 규명과 대책을 세워달라며 거리로 나왔고 2017년 4월, 환경부에 건강 영향조사를 청원했다. 석 달 뒤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이 청원을 받아들이면서 2년여 간의 주민 건강조사가 실시됐다.

 

외면이 부른 재앙
문제는 연초박이었다. 연초박은 담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로, 니켈·벤젠 등 온갖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1급 발암물질이다. 비료관리법에선 이를 퇴비로 쓰더라도 가열하지 말라고 금지해뒀다. 그러나 지난달 14일, 환경부의 조사 결과 비료공장이 ‘연초박을 불법적으로 건조 공정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공장의 배출 유해물질과 주민들의 암 발생 간에 역학적 관련성이 있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금강농산이 더 비싼 비료를 만들기 위해 KT&G에서 사들인 연초박을 유기질 비료로 만드는 데 썼고, 이를 공기 중에 그대로 배출해 문제가 일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환경부는 장점마을의 전체 암 발생률이 일반지역보다 1.99배 높았고, 담낭 및 담도암은 15.24배, 피부암은 11.6배 높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아니었지만, 공장 근로자 22명 중 5명도 암이 발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민들의 피해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은 어려워 보인다. 피해구제는 원인자인 비료공장이 1차 책임을 져야 하지만 공장은 2017년에 폐업했고, 사장도 폐암으로 사망해 책임질 주체가 없는 상태다. 이에 정부는 ‘환경 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법(피해구제법)’을 통해 피해자들이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주민들의 고통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치료비는 자기부담금 정도만 지원되고, 그마저도 주민이 비료공장이나 KT&G 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겨 배상을 받으면 반납해야 한다.


주민들은 “이미 부도 처리돼 주인이 없는 비료공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관리를 소홀히 한 행정당국과 비료공장에 연초박을 제공한 KT&G에 집단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장점마을 주민대책위는 “주민들의 환경 참사는 KT&G 사업장폐기물인 연초박이 원인”이라며 대책을 촉구하는 동시에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전북도·익산시는 주민들에게 공식 사과하라”며 행정당국의 책임을 물었다.

 

장점마을뿐만이 아니다?
집단으로 암이 발병한 마을은 장점마을에서 그치지 않는다. 폐기물 공장이 들어온 뒤 중금속이 있는 먼지로 뒤덮인 인천 사월마을을 비롯한 6개의 마을이 그곳이다.


인천 사월마을은 1992년 마을과 1km 떨어진 곳에 쓰레기 매립지와 소규모 공장 100여 곳이 들어서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2017년 말 환경부는 주민 건강 영향조사를 실시했고, 지난달 19일 사월마을은 ‘주거 부적합’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인천시는 사월마을 주민들의 집단이주 방안을 계획하고 있으나, 정부로부터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밖에도 전국 곳곳의 마을에서 인근 시설의 유해물질 배출로 인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전북 남원의 내기마을과 경기도 안양시 연현마을은 아스콘 공장으로 인해 많은 주민이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거나 암 진단을 받았다. 아스콘이란 아스팔트 콘크리트의 줄임말로,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벤조피렌 등 1급 발암물질이 포함된 물질이다.


전북 정읍 정애마을에도 2016년 폐기물재활용업체가 들어오면서 주민들이 건강문제와 하수, 냄새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경북 봉화에서도 주변 제련소로 인해 주민들이 우려를 놓지 못하고 있다. 충북 청주시 북이면에서도 지난해에만 45명의 암 환자가 발생하는 등 주변 시설과 주민들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장점마을은 지금까지 심증만 있었던 환경오염과 질병 사이의 관련성을 확인한 첫 사례다. 특히 비특이성 질환의 역학적 관련성이 처음으로 인정된 사건으로, 한편에선 환경오염 예방과 대응 시스템 전체에 변혁을 불러올 단초로 기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멍게는 유생 단계일 때에는 눈과 뇌, 척수 등을 가지고 있지만, 살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게 되면 자신의 뇌를 양분 삼은 채 평생 그곳에만 머물게 된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나온 대사다.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멍게였다. 멍게와 같이 일상에 타협하고 현실에 안주했고, 이웃의 어려움에 관심 가지지 않았다.


행정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장점마을의 책임소재를 철저히 규명하고 합당한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신중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전국 곳곳의 고통 받고 있는 마을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확대해 더 이상의 피해가 초래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폐해를 없애지 못한다면 피해자들의 죽음은 억울할 뿐이다. 개인이 모이면 집단이 되고 집단의 관심이 억울한 죽음을 막는다. 우리 또한 남의 일이라며 외면하지 않고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야 한다.

 

 

 박지윤 기자
nuyijkra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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