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256345
일 자
18.01.25
조회
2071
글쓴이
이슬기
제목 : 2018 제2회 학술세미나 및 강독회(신데렐라 이펙트 연구)

2018년 제2회 국제문화연구원 학술세미나 및 강독회

제10차 학술세미나: 신데렐라 이펙트 관련 연구 (5)

장소: 국제문화연구원, 시간: 1/25/2018(목)


 Ⅰ. 학술활동 내용

     1) 김기영 연구자, 동화와 영화에 나타난 신데렐라 이펙트현상
  - 위 소논문을 작성하였고, 발표 및 토론을 하였음.
     2) 이삼태 연구자, 󰡔생쥐와 인간󰡕의 각색과정에서 얻은 한 교훈
  - 위 소논문을 공동 작성하였고, 발표 및 토론을 하였음.
   3) 이건근 연구자, 󰡔생쥐와 인간󰡕의 각색과정에서 얻은 한 교훈
  - 위 소논문을 공동 작성하였고, 발표 및 토론을 하였음.
   4) 조이경 연구자, 셰익스피어 소네트: 동성애적 성향과 변주에 관하여(2)
  - 위 소논문을 작성하였고, 발표 및 토론을 하였음.
  
 
 Ⅱ. 동화와 영화에 나타난 신데렐라 이펙트 현상

  <Abstract>
Cinderella Effect in the Fairy Tales & Mov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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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ren's and Household Tales is a collection of fairy tales first published in 1812 by the Grimm brothers. The collection is commonly known in English as Grimms' Fairy Tales. The first volume of the first edition contained 86 stories, Stories were added, from one edition to the next, until the seventh held 211 tales. Many changes through the editions – such as turning the wicked mother of the first edition in Snow White and Hansel and Gretel. Grimm’s Fairy Tales are still very popular among the people and they have been reproduced as movies, TV dramas.
It is noticed that many step-mothers appearing in the tales. They were very harsh on their step-children. This paper is dealing with the step parents-children relationship in the Grimm’s Fairy Tales, aims at finding hidden symbolic meanings. And this paper will examine the Cinderella Effect as a social phenomenon as well.

Key Words

Cinderella Effect, Grimm’s Fairy Tales, Stepfather, Stepmother


Ⅰ. 서론

새엄마, 새아빠, 이복형제, 자매와 같이 재혼이나 외도로 인해파생된 가족관계는 세계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으며 옛날에는 동화의 단골소재였고 오늘날 영화나 드라마에 빈번히 등장하는 설정이기도 하다.『신데렐라 』나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Hansel and Gretel )과 같이 잘 알려진 동화들은 17세기-19세기부터 인쇄본의 형태로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인간의 생활과 정신세계를 반영한 동화들이 오랜 기간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널리 보급되면서 그 내용들이 일종의 진리처럼 사람들의 의식 안에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의붓 가족을 둘러싼 갈등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나 영화, 드라마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은 특히 아동학대와 관련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의붓자식에 대한 차별과 학대를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하여 규명하고자 하는 학자들도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의붓 가족과 관련된 고전 동화와 관련 영화에 등장하는 의붓 가족 간 갈등과 실제로 사회에서 발생하는 의붓 가정 내 갈등과 학대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 의붓 가족을 소재로 한 동화

친자식과 의붓자식이 한집에서 생활하는 경우 의붓자식이 차별대우나 학대를 받을 확률이 높다. 이런 현상을  ‘신데렐라 효과(Cinderella effect)’라고 한다.  이 심리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용어는『신데렐라』라고 하는 동화에서 유래되었다.『신데렐라』와 같이 친모를 잃은 아이가 계모로부터 학대를 받아 고생을 한다는 설정의 동화는 오래전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견된다. 기록물의 형태로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9세기 무렵 중국 당나라 시대에 발간된 「유양잡조(酉陽雜俎)」라는 동화집에 실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예센이라는 이름의 소녀는 계모와 계모가 낳은 의붓 자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며 살다가 어느 날 나라에서 열리는 잔치에 가게 된다. 급히 돌아오다가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놓고 오게 된다는 점. 왕자가 신발 한 짝을 가지고 나머지 한 짝의 주인과 결혼하겠노라고 공표한 점 등이 서양의 『신데렐라 』와 흡사할 뿐 아니라 시기적으로 보면 더 오래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신데렐라 』동화는 1697년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가 편찬한 단편집 『교훈이 담긴 옛날이야기와 꽁트( 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é)』에 실린 단편 「상드리옹 또는 작은 고무신(Cendrillon ou la petite pantoufle de verre)」이다.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동화작가인 그림형제(Jacob Ludwig Carl Grimm 1785-1863, Wilhelm Carl Grimm, 1786-1859)가 1812년 유럽각지의 구전동화를 수집하여 Children’s Stories and Household Tales라는 이름의 동화집을 발간하였는데 여기에는 계모가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이야기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신데렐라』를 비롯해서 『진짜신부』(The True Sweetheart), 『노간주나무』(The Juniper Tree), 『여섯 마리 백조』(The Six Swans), 『하얀 신부와 까만 신부』(The white bride and the black bride), 『어린양과 물고기』(Little lamb and Little Fish), 『열두 형제』(The Twelve Brothers) ,『백설공주』(Snow White and Seven Dwarves), 『오누이』(Little brother and little sister),『숲 속의 세 난쟁이』(The Three Little men in the forest), 『신데렐라』(Cinderella), 『홀레 부인』(Mother Holle), 『사랑하는 롤란트』(Sweetheart Roland),『외눈박이, 두눈박이, 세눈박이』(One-Eye, Two-Eyes, and Three-Eyes)와 같은 동화들이 계모 밑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림동화집은 이후 7차례의 개정을 거치게 된다. 구전동화가 문서화 되고 개정되는 과정에서 내용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예를 들어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Snow White and Seven Dwarfs)에 등장하는 왕비는 구전되던 당시에는 백설공주의 생모였는데 그림 형제에 의해 문서화 되는 과정에서 계모로 수정되었다. 『헨젤과 그레텔』(Hansel and Gretel )의 경우에는 초판에서는 아이들의 엄마가 친엄마였던 것이 개정을 거치면서 계모로 바뀐다. “The Grimms were so disturbed by the abundance of murderous mothers in folk tales they recast some as stepmothers.” Upon investigation, we find that in the early versions of “Hansel and Gretel,” the woodcutter and his wife are the biological parents of the two children(Arielle A. Silver, 2015; 11-12에서 재인용).
 그림 동화집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대부분 배우자의 뜻을 따르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에 반해 계모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면모를 지니며 그들의 이러한 잔악성은 개정이 거듭됨에 따라 극대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그림형제는 동화집 집필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흑인과 유대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여 이들이 동화 속 마녀 또는 사악한 계모와 같은 등장인물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로 인식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The Grimms consciously painted similarities between Jews, Blacks, witches, and stepmothers, and entwined them all with moralistic messages about crime and punishment and infiltration into an already-formed family unit”(Hewitt-White 132).
그림동화집에 실린, 의붓 가족에 관한 이야기 중 계부가 등장하는 한 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이야기에는 모두 계모가 등장한다. 이는 여성이 출산 중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던 당시 열악한 의료여건과 무관하지 않다. 생모는 일찍 사망함으로써 텍스트 내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이나 비중은 낮아지게 된다. 주변 인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일찍 사망함으로써 자녀들에게 선한 이미지만을 남긴다. 동화에 등장하는 계모의 의붓자식들에 대한 학대는 극단적인 경우가 많았다. 계모들은 의붓자식을 내쫓거나 죽이려 한다.『노간주나무』에서는 계모가 의붓아들을 죽여 스프를 만들어 남편 즉 죽은 아이의 친아빠에게 내놓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는 인육스프를 맛있게 먹는다. 의붓자식에 대한 계모의 구박과 학대가 잔혹할수록 상대적으로 친모에 대한 선한 이미지는 강화된다. “The now—dead biological mothers were replaced with stepmother, the dead mother characters were able to retain saintly, positive qualities befitting the nineteenth century bourgeois construction of a cult of motherhood. . .Whereas biological mothers are not punished(in the tales) for their misdeeds, stepmothers routinely are”(Schmiesing 347-48).
계모와 의붓딸 간의 갈등은 그림동화집에 수록된 이야기 중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이다. 심리학을 기반으로 이러한 갈등의 배경에 관해 살펴보자면 우선 베텔하임은 『백설공주』를 본질적으로 오이디푸스 갈등을 다룬 동화로 분류한다. 아버지를 중간에 놓고 모녀가 벌이는 반목이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인데 그 강도를 완화시키기 위해 친모가 계모로 변형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한다. 동화에서 계모나 계부의 존재는 아이로 하여금 친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수한 감정을 손상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자녀가 친부모에게 적대심을 느낄 때 수반되는 죄의식을 덜어주는 방편이라는 것이다(이경옥 288).
 칼 융의 이론을 지지하는 Von Buchholtz는 동화는 집단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얘기한다. 백설공주와 계모왕비는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존재하는, 상호 대립적인 심리개념이라는 것이다. “ It is important to get underlying messages from the personal or collective unconscious. Looking at the characters from this archetypal standpoint, Snow White and her stepmother can be interpreted as light and shadow sides of the feminine psyche. The relationship between Snow White and her stepmother can be seen as an allegory of female maturation and maternal jealousy in its most pathological form. This negative feminine can be seen as an element of universal human feelings“(Von Buchholtz 8). 융 학파 작가인 Jacqueline Schectman 역시 ‘Stepmother’라는 단어를 여성적 원형의 불온한 이면으로 간주한다. “Jungian author Jacqueline Schectman uses the term “Stepmother” as representative of the shadow feminine archetype. She maintains that every person has the “Stepmother” in their psyche” (Schectman 80). 심리학을 기반으로 그림동화 분석을 시도하는 것은 이들 동화에 존재하는 갈등을 개인적인 문제로 보는 것이라 하겠다.

그림동화의 개편양상과 현실 속 의붓 가정 실태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모든 이들에게 친숙한 그림동화는 사실 여성학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공정하지 않은 여성관 특히 계모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어주고 있다. 현실적인 여성 인물들은 배제된 채 주로 남성 인물들이 긍정적이고 독자의 감정이입이 용이한 인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는 작가인 그림형제의 의도적인 노력이 개입되었다고 추측된다. 예를 들어 “헨젤과 그레텔”이 구전동화, 그리고 그림동화 초판본에 실렸을 때만 해도 남매는 굶주린 친부모에 의해 숲에 버려지게 되었었는데 그림형제의 개정판 이후 친엄마가  무정한 새엄마로 바뀐다.
“헨젤과 그레텔” 외에도 매정한 새엄마가 등장하는 동화는 많다. 이에 반해 잔인한 새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등장하는 이야기는 단 한 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동화가 발휘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림동화집에 등장하는 사악한 계모상을 거부감 없이 수용한다. 재혼가정에서 새엄마 역할을 맡게 된 초혼 여성들은 어깨가 무겁다. 배우자가 기존에 형성한, 자녀들을 포함한 가정에 무리없이 흡습되어 가족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새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동화로 인해 형성된 새엄마에 대한 아이들의 이웃의, 그리고 사회의 편견에 저항해야 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
계모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매우 심각하다. 옥스포드 사전에서 ‘stepmotherly’를 찾아보면 그 정의가 ‘냉혹하며 태만한’(harsh and neglectful)이라고 표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현대사회는 이혼과 재혼이 급증함에 따라 이런 것들에 의해 다양한 유형의 가족과 가정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런 복합가정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여성 작가들을 중심으로 발간된 소설과 동화들에는 그림동화에 등장하는 새엄마와는 다른 새엄마가 등장한다. 그녀들은 보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지녔다. 그림동화에 등장했던 새엄마와 같이 의붓자식을 늘 학대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친엄마라고 해서 무조건 자애롭기만 한 것도 아니다. (참고로 그림동화집에 등장하는 친엄마는 한결같이 착하고 일찍 세상을 떠남)
Anne Fine의 Step by Wicked step과 같은 작품이 여기에 해당된다. 된다고 하겠다. 그런가 하면 동화 내용 자체를 다른 시각에서 다룬 참신한 작품들도 등장한다.  트리샤 샤스칸의 『새엄마가 들려주는 신데렐라 이야기』 는 새엄마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마무리된다.

*그림동화집에는  계모를 항상 사악한 존재로 표현한 동화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가학적이고 여성을 폄하하거나 반유대성향이 농후한 동화들도 존재한다.  유대인을 경멸하는 게르만인의 태도, 유대인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내용상의 잔혹함은  결국 나찌에 의한 유대인 학살의 정신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림형제가 “헨델과 그레텔”이야기 원본에서 등장하는 기아를 못이겨 자식을 버리는 친엄마’를 ‘새엄마’로 대치시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자식을 버리는 엄마’의 존재는 수용하기 힘들기에 ‘친엄마’를 ‘새엄마’로 대치시킨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자신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죄책감이나 거리낌 없이 ‘새엄마’라는 존재를 증오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위협감 없이 동화 속 악녀로 등장하는 새엄마를 마음껏 조롱한다.
‘새엄마’와 ‘친엄마’는 그림형제에 의해 그 이미지의 대조가 극대화되었다. 새엄마는 계략을 세우는 데 능하고 용의주도하여 유약하고 남의 말을 쉽게 잘 믿는 남편을 조종하는 데에 능하며 사치스럽다. 이에 반해 친엄마는 소박하며 자애롭고 순수하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와 남편에게 순종적이다. 일찍 세상을 떠남으로써 친엄마의 순수성은 변질되지 않고 영원히 일관되게 기억된다. 초판에 등장하는 다양한 유형의 새엄마와 친엄마는 거듭되는 개정을 거치면서 차차 상호대조되는 양상이 극대화되고 절대성을 띄게 된다.
 
*그림동화 내용과 현대사회 문제와의 괴리

동화내용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의붓자식들에게 있어서 나쁜 새엄마보다 나쁜 새아빠의 존재가 훨씬 더 위험하고 위협적이다. p.46
영국의 경우 아이와 같이 거주하는 새아빠의 수는 새엄마의 수보다 7배가량 많다. 성폭력을 포함한 다양한 아동학대는 성인여성보다는 성인남성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새아빠에 의해 일어나는 수가 많다고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현실과 그림동화의 내용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Maria Tatar는 그림동화에서는 딸을 학대하는 새아빠 얘기보다 딸을 학대하는 새엄마 얘기가 12배나 많다고 얘기한다(Tatar 1987: 155).

Ⅲ. 의붓 가족에 관한 사회적 고찰
 
  계모의 학대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동화와는 달리 현실에서 발생하는 의붓 가정 내 갈등과 학대는 가족구성원이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계모에 의한 자녀학대가 대부분이었던 동화와는 달리 실제로는 계부, 계모 모두와 관련이 되어 아동학대가 발생되어 왔다. 아동학대는 구타,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에서부터 경제적 지원이나 보살핌을 소홀히 하는 소극적인 양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 영국, 미국, 캐나다와 같은 국가에서 조사된 바에 의하면 아동학대는 양 쪽 모두 친부모인 경우보다 어느 한 쪽이 의붓 부모인 경우 압도적으로 더 많이 발생한다(Daly 32-33). 극단적인 학대는 비속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친부모에 의한 자식살해와 의붓 부모에 의한 자식살해는 발생 건수와 살해 방법, 동반 자살 여부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의붓자식은 폭행을 가해 죽이는 것이 일반적인 데에 비해 친자식의 경우에는 비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친자식 살해에 있어서는 부모가 동반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의붓 부모가 의붓자식과 동반 자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Daly 34-35). ‘수컷 원숭이나 사자가 자신의 새끼를 빨리 갖도록 하려고 암컷이 낳은, 다른 수컷의 새끼들을 찾아내어 은밀히 죽이는 본능적인 살인과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의붓자식학대가 이해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럼에도 의붓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를 성인남성이 배우자가 본인의 친자식을 임신할 수 있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간의 아동학대는 동물의 경우처럼 그 자체가 진화라고 보기는 어렵고  심리조직의 병폐적인 결과로 인식되어져야 할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폭력이 동원된 극단적인 학대 외에도 의붓 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 간에 보다 많은 심리적 갈등이 존재한다. Wednesday Martin은 자녀를 양육하는 남성과 자녀가 없는 여성과의 관계는 70프로 이상 실패로 끝난다는 조사내용을 저서 Stepmonster에서 밝힌 바 있다(Martin 1). Mavis Hetherington은 30년간 천사백여 가정을 조사한 끝에 대다수의 아동들이 새아빠는 고마운 존재로 여기는  것에 반해 새엄마와의 관계는 일종의 시련으로 여긴다는 것을 파악하였다(Silver 24 ). 이는 의붓 부모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새아빠들보다 많은 비율의 새엄마들이 자신들의 역할 수행에 있어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이는 새엄마로서 요구되는 역할이나 기대치가 모호한 경우가 많고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상적인 롤모델도 찾아보기 힘들며 첫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정을 보다 이상적인 가정으로 간주하는 문화적 편견 등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배우자의 감정적인 지원이나 배려가 부족할 경우 그 어려움은 가중된다(Hoffman 4). 또한 널리 알려진 동화들에 등장하는 사악한 계모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엄마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사실이다. 100여명의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새엄마’, ‘계모’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단어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0%가 ‘믿을 수 없는’, ‘영악한’, ‘잔인한’, ‘이중인격’등의 부정적인 언어를 기재했다. 이러한 고착된 편견은 실제로 새엄마 역할을 맡은 여성들에게 큰 정신적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재혼으로 인해 맺어진 의붓 자녀와의 관계는 다양한 상황과 가족 구성원의 다양한 상황과 감정에 의해 여러 변수를 발생시키곤 한다. 많은 아이들이 새엄마와 긍정적인 유대가 깊어짐에 따라 친엄마에게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친엄마와의 결속유지를 위해 새엄마에게 의도적으로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 때 아이가 새엄마에게 드러내 보이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새엄마는 감정적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Ⅳ. 의붓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

 1950년 디즈니사에서 제작된 Cinderella 1을 필두로 페로와 그림형제동화를 내용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했는데 친모와 계모의 양극화된 인물상은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도 전승되었다. 영상매체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계모상은 사회의 강력한 고정관념을 형성하게 되고 이는 실제로 의붓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의 고충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There can be little doubt that hearing fairy tales about wicked stepmothers would negatively color young children’s images of them. Unfortunately, most modern fairy tales do not offer much more promising portrayals of stepmothers”(Allison 27-28). 비교적 원전의 내용에 충실했던 초기 관련영화들에 비해 21세기에 접어들자 원전의 내용을 수정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변화된 의식과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화와 관련된 영화 이외에도 의붓가족 내 갈등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들이나 영화들은 많다. 크리스 컬럼버스 감독(Chris Columbus)의 1998년 작 『스텝맘』(Stepmom)은 아빠의 이혼과 재혼으로 구성된 의붓 가정 얘기를 다루고 있다. Maggie Robb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가정에 새로이 들어와 엄마 역할을 맡게 된 새엄마 이사벨(Isabel)의 고충과 소외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혼녀 재키(Jackie)는 전남편 루크(Luke)의 애인이 자신의 아이들을 보살피는 점에 있어 못마땅한 점이 많다. 프로사진작가인 Isabel은 약혼자  Luke의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 최선을 다하나 그녀의 노력은 친엄마의 교묘한 방해와 아이들의 냉담한 반응으로 인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곤 한다. 동화를 통해 구축된 부정적인 계모상이 실제로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Isabel의 대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녀는 “동화에 나오는 새엄마들은 왜 다들 못생겼지?”라고 얘기한다. 새엄마의 진심어린 노력으로 아이들은 조금씩 그녀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만 친엄마를 생각하면 아이들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아들 벤은 엄마가 원하면 새엄마를 미워하겠노라고 Jackie에게 말한다. “If you want me to hate her, I will.” Jackie는 아이들을 위한 Isabel의 아이디어를 가로채기도 하고 아이들 앞에서 그녀에 관한 험담을 늘어놓기도 한다. 자신이 예전에 아들 벤에게 불러주곤 하던 노래를 Isabel이 병원에 누워있는 벤을 간호하며 부르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Jackie는 충격을 받는다. 의붓 관계이긴 하나 아이들과 Isabel과의 관계에서도 친밀감과 애정이 싹트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된 Jackie는 Isabel에 대한 질투와 증오를 거두기로 한다. 본인이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로 인해 의기소침해 있는 Isabel에게 “나는 아이들과의 과거를 가졌으니 당신은 아이들의 미래를 가져요.”라고  얘기하며 그녀를 격려한다. Jackie가 숨을 거두기 직전 아빠와 아이들 그리고 두 엄마들 모두 한 자리에 모여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스텝맘』은 동화에 기반한 계모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다 긍정적인 계모상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Ⅴ. 결론


인용문헌

이경옥(2010). 『세 개의 무덤』과 『백설공주』 비교연구: 오이디푸스적 갈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영어영문학 연구』, 52(4). 288.
Bettleheim, Bruno(1985). The Uses of Enchantment: The Meaning and Importance of Fairy Tales. New York: Alfred A. Knopf.
Campbell, Kim(2004). “Film’s Grimm Future; Once upon a Time, Fairy Tales Lived Happily Ever after. Now They’re Being Rejiggered for Stage and Screen.” Science Monitor April. 9. 2004.
Christian, Allison(2005). “Contesting The Myth Of The ‘Wicked Stepmother’: Narrative Analysis Of An Online Stepfamily Support Group.” Western Journal of Communication 69.1(2005)
Daly, Marin(1998). The Truth About Cinderella.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 Press.
Hewitt-White, Caitlin(2014). “The Stepmother in the Grimms’ Children’s and Household Talels.” Journal of the Association for Research on Mothering 5.1: 121-34.
Hoffman, Rose Marie(2015). “Why Is Stepmothering More Difficult Than Stepfathering?” National Stepfamily Resource Center. The National Stepfamily Resource Center, 1 June 1995.
Leonard, Amy(2015). De Anza Collage. Web. 28 Jan.2015.
        <http://www. deanza.edu/faculty/leonardamy/archetypes.pdf>.
Martin, Wednesday(2009). Stepmonster. Boston: Houghton Mifflin Harcourt.
Schectman, Jacqueline M(1993). The Stepmother in Fairy Tales: Bereavement and the Feminine Shadow. Boston: S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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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 Arielle A(2015). “Wicked, Selfish, and Cruel: An Inquiry into the Stepmother Narrative”. Los Angeles: Antioch Univ.


 Ⅲ. <생쥐와 인간>의 각색과정에서 배운 교훈
Lesson Learned from the Adaptation Process of Of Mice and Men

이삼태ㆍ이건근

요약(Abstract) 존 스타인벡의 중편소설 󰡔생쥐와 인간󰡕은 1937년에 출간된 후 같은 해에 드라마로도 각색되어 흥행과 비평에 많은 호응을 받은 후 지금까지 미국과 전 세계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논문은 이 작품이 각색된 대표적인 사례가 되는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텔레비전 영화들을 통사적으로 고찰하여 그것들의 변주된 내용들을 소개한다. 이 연구는 아직 국내에 생소한 문헌자료를 참고하고, 각색된 작품들을 그것들에 대한 비평에 비추어 원작과 비교한다. 그 결과 일부 영화들에서 원작의 주인공이 조오지와 레니인 것에 더하여 컬리의 아내의 역할을 강조하여 과거 카인과 아벨적인 주제가 다른 인물들로 확대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나아가 더 중요한 것은 고독과 꿈이 주는 환상적 효과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스타인벡의 화법이 무의미하게 변주된 경우에 예술적으로 실패한다는 교훈이다. 이 연구는 문학과 영상의 관계에 대한 학문적 노력에 기여할 것으로 의도되어있으며, 󰡔생쥐와 인간󰡕에 나타난 희비극적 주제의식이 현대에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핵심어(Key Words)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 스타인벡의 화법(Steinbeck’s narrative art), 문학과 영상                         (literature and film), 문학작품의 각색(adaptation of literary                            works)


Ⅰ. 󰡔생쥐와 인간󰡕의 소설과 드라마 그리고 영화로의 변주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 중의 하나인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 1937)은 19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기 이주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해서인지 투박한 인물구성과 섬세하지 못한 줄거리가 오히려 사실적인 효과를 보였다(Lee, 2015). 그 이야기를 요약하면 두 명의 남성들 즉 우둔하기 짝이 없어 부드러운 사물을 만지는 것에 집착하는 레니 스몰(Lennie Small)과 그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면서도 변함없이 우정을 실천하는 조오지 밀턴(George Milton)은 많은 직장을 전전하면서도 수중에 남은 돈이 거의 없는 젊은이들로서 캘리포니아의 한 목장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매번 그랬듯이 레니의 유아적 행위는 그들의 일을 좌절하게 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목장주인의 아들 컬리(Curley)의 아내와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만들어낸다.
선천적/후천적 환경이 불리한 레니와 조오지에게 불운을 가져다 준 컬리의 아내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새댁이지만, 목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몰래 도망을 가려던 차에 헛간에 홀로 남아 실수로 죽인 강아지 때문에 슬퍼해하는 레니를 발견한다. 그곳에서 그녀가 그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소개하며 신세타령을 하지만, 레니는 정작 그것을 이해하기는커녕 우연하게 만지게 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그나마 남아있던 이성을 잃게 된다. 이 상황에 겁이 난 그녀가 비명을 지르고 이내 두려운 나머지 레니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결국에는 그녀를 질식사시킨다. 이후 이런 상황에 만나기로 한 호숫가에서 조오지는 레니에게 “호사스럽게 살아보자(live off the fatta the lan’; Steinbeck, 2000: 16)”는 그들의 꿈을 상기시키고, 이것에 황홀해하는 친구를 등 뒤에서 총살한다.
유전적/사회적 불리함에 불행한 우연성이 더해져 이러한 불행의 결말을 낳은 󰡔생쥐와 인간󰡕은 흥행에 성공하여 공식적인 출간일(1937년 2월 25일)에 앞서 117,000권이 팔리는 등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이것은 작가는 물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이 작품은 드라마 대본으로도 동시에 사용될 수 있도록 대화와 지문을 중심으로 구성된 중편소설과 희곡의 중간 형태인 소위 플레이-노블레(Play-Novelette)로 쓰인 까닭에 별다른 각색을 거치지 않고 같은 해 5월 21일에서 7월 31일까지 샌프란시스코의 극장연맹(Theater Union)에 의해 공연되었다. 하지만, 소설과 드라마의 매체 간 차이점에 따른 배우들의 부적응이 한계로 지적되었고(French, 1965), 스타인벡이 직접 각색한 드라마가 그 해 11월 23일에 브로드웨이에 있는 뮤직박스극장(Music Box Theater)에서 성공적으로 공연되어 마침내 뉴욕드라마비평가회(New York Drama Critics’ Circle)가 수여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이 논문은 스타인벡의 소설 󰡔생쥐와 인간󰡕이 드라마로 각색된 후 할리우드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발전해온 사례들과 그 과정에 나타난 변주 그리고 그것에 대한 비평적 반응을 국내에 생소한 문헌자료와 최근 선행연구들에 비추어 고찰한다. 그 결과 이 작품의 주인공이 조오지와 레니이었던 것에 컬리의 아내의 역할이 강조되는 등 과거 카인과 아벨적인 주제가 다른 인물들로 확대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하지만 고독과 꿈이 주는 환상적 효과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원작의 화법이 무의미하게 변주된 경우에 예술적으로 실패한다는 교훈이 강조된다.


Ⅱ. 󰡔생쥐와 인간󰡕이 변주된 사례들에 대한 고찰

소설과 드라마로서 󰡔생쥐와 인간󰡕은 앞에서 보듯이 양자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에 더하여, 같은 해에 출시되었다는 점에서 매체가 다르다고 해도 하나의 작품으로 취급될 수 있다. 이 작품은 하나의 몸에 팔과 다리가 하나씩 더해진 형태로 양 장르 모두에서 극찬을 받았고, 특히 드라마에서 영리한 조오지 역할을 한 포드(Wallace Ford)와 정신장애자 레니 역할을 한 크로포드(Broderick Crawford)의 감동적인 연기를 통해 당시 코미디 감독으로 유명하던 카우만의 경력에 진지한 새로운 면모를 더해주었다. 이 드라마는 브로드웨이에서 207회씩이나 공연되었고, <표 1>에 보듯이 이후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년도
매체
각색
감독
캐스팅
1937
Theater:
Broadway
John Steinbeck
George S. Kaufman
Wallace Ford(George),
Broderick Crawford(Lennie),
Sam Byrd(Curley),
Claire Luce(Curley's wife),
Thomas Findlay, John T. Hamilton, Will Geer, Leigh Whipper
1939
Film:
United Artists
Eugene
Solow
Lewis
Milestone
Burgess Meredith(George),
Lon Chaney, Jr.(Lennie),
Bob Steele(Curley),
Betty Field(Mae),
Charles Bickford, Roman Bohnen, Noah Beery, Jr., Leigh Whipper, Oscar O'Shea
1958
Theater:
Off Broadway
 Ira J. Bilowit
(book, lyrics),
Wilson Lehr(book), Alfred Brooks(music)
Jerome Eskow
Leo Penn(George),
Art Lund(Lennie), Byrne Piven(Curley),
Jo Sullivan(Curley's wife),
Tony Kraber, John F. Hamilton, Tom Noel
1968
TV-movie
ABC-TV
John Hopkins
Ted Kotcheff
George Segal(George),
Nicol Williamson(Lennie),
Don Gordon(Curley),
Joey Heatherton(Curley's wife),
Will Geer, Moses Gunn, Donald Moffar, Dana Elcar, John Randolph
1981
TV-movie
NBC-TV
E. Nick Alexander
Reza Badiyi
Robert Blake(George),
Randy Quaid(Lennie),
Ted Neeley(Curley),
Cassie Yates(Curley's wife),
Mitch Ryan, Lew Ayres, Pat Hingle, Whitman Mayo, Dennis Fimple, Pat Corley
1992
Film: MGM
Horton Foote
Gary Sinise
Gary Sinise(George),
John Malkovich(Lennie),
Casey Siemaszko(Curley),
Sherilyn Fenn(Curley's wife),
Ray Walston, John Terry, Richard Riehle, Joe Morton, Noble Willingham

다음은 미국이외의 사례들임
1962

1977
a Turkish film Ikimize bir Dunya [A World for You and Me](1962),
a West German TV-movie Von Mausen und Menschen(1968),
a French Canadian television version Des Souris et des Hommes(1971),
an Iranian film Topoli(1972),
a Turkish TV-movie Fareler ve Insanlar(1975),
a Greek television adaptation Anthropoi kai Pontikia(1977),
a Swedish TV-movie Moss and Men by Carlisle Floyd which premiered in 1970
<표 >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의 각색 사례들

 출처: Hischak(2012: 165-166)

물론 󰡔생쥐와 인간󰡕에 나타난 스타인벡의 희비극적 요소를 비판하는 견해도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 윌슨(Edmund Wilson)은 작가가 레니 등 주요 인물들을 동물에 비유함으로써 인간을 하등동물의 수준으로 격하하고 있다고 말한다(Johnson, 2004). 이에 대하여 리스카(Peter Lisca)는 등장인물의 우화적 모습이 과학과 자연에 기초한 작가의 사상을 반영할 뿐이라고 주장하며, “󰡔생쥐와 인간󰡕의 세계는 몰락한 장소로서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추방된 카인의 아들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고(Lisca, 1981: 368)”, 그들은 원래 있던 곳을 농장의 형태로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차세대 스타인벡 전문가 오웬스(Louis Owens)는 이 작품에 나타난 에덴동산의 꿈은 단지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서 토끼를 비롯한 부드러운 사물에 대한 레니의 욕망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따뜻한 접촉을 희구하는 모든 인간의 본능을 상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감정 때문에 조오지와 레니가 서로서로 의지하고, 컬리의 아내는 대화의 상대를 찾아 남성들의 시선을 유혹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한다(Owens, 1985: 101).
결국 󰡔생쥐와 인간󰡕이 흥행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이 작품이 1930년대 더스트 보울(Dust Bowl)을 비롯한 경제적 상황을 그린 시의적인 내용이외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독의 양태와 환상일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꿈의 세계를 표현함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소재를 더 넓은 문화요소로 확대한 계기로서 영화감독 마일스톤(Lewis Milestone)과 제작자 로우치(Hal Roach)는 1939년 12월 22일에 이 작품을 각색한 첫 번째 영화를 선보였다. 특히 솔로우(Eugene Solow)는 이 영화의 대본을 쓰면서 원작에 나온 대화들의 대부분을 실었고, 캘리포니아의 들판과 언덕 그리고 실제 노동현장을 찍었던 브로딘(Norbert Brodine)의 사진을 추가함으로써 이주 노동자 합숙소와 처음/끝 부분을 장식했던 연못에 제한되었던 배경을 확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마일스톤은 트레이시(Spencer Tracy)와 카그니(James Cagney) 그리고 가필드(John Garfield) 등 유명배우들이 조오지 배역을 원했지만, 신인배우 머리디스(Meredith)에게 조오지 역할을 주었고, 당시 50차례나 조연을 맡았던 체이니(Lon Chaney, Jr.)에게 주연인 레니 역할을 맡도록 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으로서 필드(Betty Field)는 컬리의 아내 역을 담당하면서 이전의 문학작품과 다르게 처음으로 ‘매(Mae)’라는 이름을 부여받았고, 남편과 시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녀의 삶을 새롭게 드러냄으로써 소외받은 여성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는 등 주인공으로서의 당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영화음악을 담당한 코프랜드(Aaron Copland)는 다른 영화에서보다
<그림 > 1939년 영화 󰡔생쥐와 인간󰡕의 포스터(출처는 www.imdb.com)
 3배나 더 많은 시간을 배정받았으며, 그것의 효과는 󰡔역마차(Stagecoach)󰡕와 함께 그 분야의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즉 코프랜드는 이 작품의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당시 관례적으로 사용되었던 교향악을 기피하는 대신 하나 또는 두 개의 악기로만 효과를 살리는 방법으로 농부들의 휘파람소리를 연상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이후 다른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원래 스타인벡은 영화가 가진 상업주의적 사고를 경계한 나머지, “어떠한 경우라도 할리우드에 가지 않겠다(Steinbeck and Wallsten, 1975: 148)”고 말하는 등 󰡔생쥐와 인간󰡕이 영화화되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드라마 작품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에 담긴 물질주의가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음과 그 환상이 영화로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마일스톤에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목장을 보도록 하게 하는 등 그동안의 입장을 변경했던 것이다(Millichap, 1983: 14). 비록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커다란 흥행을 거두어내지는 못했지만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호평이 이어졌다. 즉 300,000 달러의 작은 투자금액과 42일 간의 짧은 촬영기간을 감안하면 가성비가 매우 높은 작품이라는 것이다(“Movie of the Week: Of Mice and Men”, 1940). 특히 예술적인 면에서 이 영화는 놀라운 반향을 일으켜서 당시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의 한 기자는 이 영화를 본 소감이 “상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한 연기자 집단뿐만 아니라 미국의 1/3 아니면 1/30만큼이라도 보고 있는 느낌(Long, 2008: 25)”과 같다고 칭찬한다. 또한 영화 평론가 힉햄(Charles Higham)과 그린버그(Joel Greenberg)는 그들의 책 󰡔40년대의 할리우드(Hollywood in the Forties, 1968)󰡕에서 이 영화의 배경이 경제적 어려움과 서정적 지방색을 담고 있으며, 마일스톤이 농장과 땅 그리고 그곳의 일꾼들의 행위를 그림으로써 아름다운 인정과 이주 노동자들이 느꼈던 고독과 서러움을 잘 표현해준다고 주장한다.
다음 이후의 각색 작품들로서 <표 1>에서 보듯이 1958년과 1968년에 최초의 뮤지컬과 TV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1981년에 또 한편의 TV 영화가 생산되었다. 먼저 뮤지컬 작품은 당시 뉴욕의 신문사들이 파업 중이어서 그 작품에 대한 홍보와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것의 음악과 출판물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가 2007년이 되어서야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Off Off Broadway)에서 공연된 자료가 발견되어서 수준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968년 TV 영화 작품은 세갈(George Segal)과 윌리엄슨(Nicol Williamson)을 비롯한 수준급 배우들을 캐스팅했음에도 불구하고 난데없이 주인공들의 동성연애가 다루어지는 바람에 원작의 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어서 1981년 작품 역시 조오지와 레니가 위드(Weed)에서 소동을 피운 뒤 살아있는 클라라(Clara) 아줌마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오는 등 원작과 다른 심각한 변주를 보였다. 그 내용에서 클라라의 존재가 원작보다 조오지의 고뇌를 약하게 할 뿐만 아니라, 웃음기가 역력한 조오지가 원작의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드라마나 일반 영화에서만큼 전달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와중에 시카고의 스테픈울프(Steppenwolf) 극장이 이 작품의 사상과 예술성을 성공적으로 부활시키고 나서, 마침내 1992년에 시니즈(Gary Sinise)가 감독과 배우를 겸한 영화가 그 기운을 이어갔다. 이러한 긍정적 반응이 나타난 이유는 위의 TV 영화들과 다르게 불필요한 변주가 없이 원작이 표현했던 화법을 최대한 잃지 않으려고 함에 있다. 물론 노동자로 보이기에 너무 젊고 고운 얼굴을 한 시니즈(조오지 역)가 상대적으로 강하지 못한 정서를 보인 점과 대머리와 썩은 이빨에 고음을 가진 말코비치(레니 역)의 연기는 예전의 자연스런 동정을 얻기보다 다소 인위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기에 요원함을 이미 인식한 조오지의 연기는 원작의 의도에 가까운 것이며, 두 사람의 연기가 충분히 양립가능하다는 호평을 받았다(Goldstein, 1992). 특히 또 다시 이름을 잃게 된 컬리의 아내는 이전 변주작품들에 비해 남성을 유혹하는 모습으로만 보이지 않고, 주위로부터의 이해와 동반관계를 간절하게 호소하는 외로운 여성으로 비추어진다. 헛간에서 조오지에게 순진한 고등학생의 이미지로 여자 친구가 있는지를 묻는 선정적인 장면이 추가되기도 했지만, 컬리가 식사 후에 자신에게 화를 내면서 그녀의 물건들을 박살내고, 사내들과 시내에 나가는 바람에 토요일 밤 내내 자신을 홀로 두게 했다고 그녀가 조오지와 레니에게 하소연하는 장면은 위 <그림 1>에서 보듯이 단순한 성충동을 자아내는 여성이라기보다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이면에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이 영화를 󰡔생쥐와 인간󰡕의 원작에 비추어 본 스타인벡 전문가로서 파리니(Jay Parini)는 경제공황기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에 감격해하며, “그의 소설들이 1930년대부터 계속 팔리고 있고, [이후에 나타난] 영화와 드라마작품들이 계속해서 생산되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잘살고 있다고 느낄지라도 50년 전에 사라진 조오지와 레니와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기(Parini, 1992: 24)”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결국 미래의 각색 작품들에 대한 지침을 더하고 있다.


Ⅲ. 문학작품의 변주에서 발견된 한 교훈

21세기 스타인벡 전문가로 유명한 히빌린(Barbara A. Heavilin)은 󰡔생쥐와 인간󰡕에 나타난 화법을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발라드에 비유하며 소박한 시골사람들의 언어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이 작품에 등장한 “떠돌이, 정신적으로 결핍된 자, 장애자, 인종적으로 소외된 자, 그리고 외로운 젊은 여성(Heavilin, 2005: 61)”의 언행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상스러운 언어들이 조오지와 레니의 대화에서 볼 수 있은 것처럼 병렬적이고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Heavilin, 2005: 70-71). 그들은 서로서로 의지해야 할 필요성을 가진 자들로서 모두 소음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하고 있으며, 스타인벡은 이들의 관계를 설교적인 문체보다 발생한 사실을 가감없이 묘사하는 화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설과 드라마로서 원작인 󰡔생쥐와 인간󰡕의 이와 같은 화법은 지난 80년 동안 많은 할리우드와 국제적인 영화들에 거의 영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사례들은 그 영화들이 고독과 꿈 그리고 소외된 자들 간의 소박한 관계성과 관련된 희비극적 화법에 무의미한 변주를 시도한 경우 결국 실패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물론 1939년과 1992년 영화에서 컬리의 아내가 조오지와 레니에 상당한 주인공으로서 자리매김한 변주는 원작에서 발전된 양태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원작이 주는 애절한 감동과 그것을 자연스럽게 재현한 스타인벡의 화법을 거슬려서는 안 된다. 이 점이 󰡔생쥐와 인간󰡕을 무대에서 공연한 드라마가 카메라로 촬영된 영화보다 원작자의 의도를 살리기에 유리한 이유가 되고,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가 지향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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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Geon-Geun(2015), “John Steinbeck’s Play-Novelette Would Be Burning Bright: On Burning Bright and The Moon Is Down”, 󰡔Foreign Literature Studies󰡕, 59: 2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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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ni, Jay(1992), “Of Bindlestiffs, Bad Times, Mice and Men”, New York Times(Sept. 2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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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Ⅳ. 셰익스피어 소네트: 동성애적 성향의 문화적 수용과 변주 (2)

조이경

 
I. 서론

먼저 본 논문의 초점이 셰익스피어의 욕망 분석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지금까지 셰익스피어의 전기적 사실들을 가늠해 보고자 하는 학계의 시도는 끊임없이 있어왔다. 특히 소네트에는 작가 내면의 심리적 욕망이 깔려있다는 전제하에 셰익스피어의 실상을 추론하여 밝혀보려 했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은 독자들은 당대의 비평가들에서부터 현대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소네트를 그의 생애와 연관 지어 셰익스피어의 전기적 사실을 밝혀내 보려는 연구를 해오며 그가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이 있어왔다. 셰익스피어의 동성애적 성향이나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논란은 단지 추정에 머물 뿐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에 관해 스티븐 부스(Stephen Booth)는 “소네트 어느 곳에도 동성애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리기도 하였다. Shakespeare's Sonnets, ed., Stephen Booth (New Haven : Yale UP, 1977), p.548
 
그러나 소네트에는 분명한 애정의 삼각관계가 있다. 셰익스피어 자신으로 여겨지는 화자와 그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젊은 친구인 Fair Friend,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애인이며 난잡한 여인으로 그려지는 검은 여인(Dark Lady)의 세 사람이다. 이러한 애정시의 주제로 볼 때 셰익스피어가 우정이상의 사랑을 표현하며 칭송했던 ‘젊은 친구’와 시인의 애인이었던 ‘검은 여인’의 정사를 알게 되면서 두 사람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감정이 나타나있다. 그는 일시적으로 마음이 상하였으나 젊은 친구에 대해서 관대하고 아끼는 마음을 회복하며 그 친구를 유혹받은 천사로 여기는데 반해 여인에게는 악마라고까지 비난한다. 이러한 소네트의 내용에서 젊은이와 셰익스피어의 관계에 대해 전기적 요소에 대한 학자들의 논란은 계속되어 왔다. 한편에서는 셰익스피어와 젊은이 사이를 이상적인 친구 관계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는 반면에 셰익스피어가 동성연애자이거나 동성연애적 성향을 가졌다는 주장도 있어 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에는 특히 소네트의 내용을 일관성 있는 줄거리로 해석해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심지어 소네트를 출판된 순서대로 영화화하려는 시도도 있다. 맨해튼(Manhattan)과 파이에트카운티(Fayette County) 코넬스빌(Connellsville)에 있는 72nd St. Films의 사장 제프 모나한(Jeff Monahan)과 피츠버그에 있는 Cup-A-Jo Production의 설립자인 조안나 로(Joanna Lowe)는 두 사람 모두 작가이자 제작자이며 감독과 배우이다. Kalson, Sally, Pittsburgh Post-Gazette (Pittsburgh, PA)
   Ms. Lowe는 “우리는 학자, 음악가, 작곡가, 시인, 배우 등의 여러 사람들이 소네트를 이야기하는 방법을 이해했습니다. 심지어 카네기 멜런 대학의 로봇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각각의 시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영화화해서 관객들이 학자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이어지는 주제를 따라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모든 소네트는 서로 다른 스타일을 부여합니다. 공포의 맥락에서는 어두운 주제가 있고 거의 슬랩스틱에 가까운 코믹한 이미지도 있으며 본능적인 느낌의 매우 관능적인 것들도 있습니다. 스타일에 따라서, 어떤 것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표현되었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폴 에먼슨(Paul Edmonson)과 스탠리 웰스(Stanley Wells)의 연구에 따르면 젊은이와 검은 여인과 경쟁관계에 있는 시인들(Rival Poets)이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관계가 있는 실재 인물들이라는 증거도 없지만 셰익스피어가 상상해낸 가상의 문학적 인물들이라는 분명한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에먼슨과 웰스는 소네트 시의 대상자 즉 수신인(addressee)이 여러 명일 수도 있다는 견해를 주장하였다. Paul Edmonson and Stanley Wells, Shakespeare's Sonnets, Oxford Shakespeare Topic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31
 소네트의 앞부분 126편중에서 명쾌하게 남성을 언급한 것은 20편이고 나머지 후반부에서 분명하게 여성을 언급한 것은 7편이다. 소네트 전체 154편중에서 127편의 시가 수신자(addressee)의 성별이 분명하지 않고 모호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소네트에 내재되어있는 애정의 삼각관계를 전기적 사실에 대한 근거를 논하는 것보다는 모호한 관계 그 자체를 다루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어떠한 것이건 간에 사실이나 진실과는 상관없이 특정 문화 속에서 필요로 하는 요구들을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바람과 필요성에 부합하도록 셰익스피어의 이미지를 이성애자로, 동성애자로, 또는 양성애자로 아니면 어떤 경우에는 여성 혐오자이거나 아니면 겸손한 사랑의 순교자로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가정들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변화하는 관점과 집착의 상황에 부응해서 변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다. 필자는 소네트의 대한 모호한 가정들 중에서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 가지, 시 속의 수신자(addressee)의 변화하는 성별에 대한 정체성과 화자(speaker)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에 집중할 것이다.
처음에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시에 담고자 의도했던 본래의 의미들이 다른 문화의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그들의 문화에 들어맞게 변화된 형태가 되기도 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문화적 측면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적 전환은 다른 문화 속으로 옮겨진 셰익스피어에 대해 과거의 영국중심의 셰익스피어 연구에 건전한 조정안을 제시하며 더불어 새로운 전망을 열어줄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에도 셰익스피어는 그가 사용한 언어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장소에서 생기 넘치도록 살아있다. 다른 언어로 번역된 어떤 텍스트에서 셰익스피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고자 할 때, 가능한 한 원래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연구가 주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터렌스 혹(Terence Hawkes)이 언급한 바와 같이 셰익스피어를 통해서 우리가 의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는 순간, 다시 말하자면, 그의 시대 이후로 또는 지리학적으로 다른 장소에서, 그의 작품을 통해서 자신들의 관심사를 표현해 내는 것은 셰익스피어가 각각의 다른 문화에서 어떻게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Terence Hawkes, Meaning by Shakespeare (London, Routledge, 1992)
 그것은 단지 셰익스피어를 본뜬 파생물이 아닌 여러 가지 의미와 해석을 드러내는 새로운 데이터를 구축해가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셰익스피어 소네트의 시들이 함유한 내용 중에서 동성애적인 독해와 논의를 고찰해 나가며 그러한 견해에 대하여 시적인 이미지를 공연무대와 영상매체 속에서 시각적 이미지로 재창조된 작품들을 살펴봄으로써, 문학적 성과를 넘어서 다양한 예술성과 시공간이 다른 문화의 장에서 학제 간 영상예술과 공연예술의 발판으로 사용되어지는 소네트의 새로운 역할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II. 소네트에 나타난 성적 지향에 대한 논의

먼저 소네트의 성적 지향이 모호한 이유에 관해서 살펴보자면, 수신자의 성별을 분명히 드러내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전체 154편중에서 전형적인 주제와 함께 수신자에 대한 유일한 단서가 나타나기도 한다. 1편부터 17편은 아이 낳을 것을 권하는 소위 출산 장려시라고 분류해 볼 있으며 시의 수신자는 분명히 남성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소네트 3에서 6행의 ‘남편인 그대의 역할을 무시하는(Disdains the tillage of thy husbandry)' 여인은 없을 것이라 하며 또 하나의 얼굴을 재생시켜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소네트 9에서는 ’과부의 눈을 적실까 두려워(for fear to wet a widow's eye)' 독신으로 생을 마치려 하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다. 앞부분의 17편의 시가 모호한 부분이 더 많기는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사랑(love)'에 대해서 사랑받는 대상을 ’thou'나 ‘thee'라고 대명사로 지칭하고 있고, 이 단어만 보자면 영어에서 중성 대명사이다. 소네트의 1부터17까지는 거의 대부분 수신자의 아름다움을 그 자녀들에게서 보존되게 하라는 일관된 설득의 내용들이고 그 중에서 소네트 3이나 9에 나타나는 남성을 일컫는 분명한 표현들로 인해서 전통적으로 출산장려의 시는 남성 ’Fair Friend'에게 쓴 시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bending gender I)
판을 거듭해오며 셰익스피어 소네트에 대한 해석과 이해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태도와 견해를 내놓고 있다. 소네트에 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남성 수신자에 대한 당혹스러움도 있었다.
(Outing the Bard)
더더욱 셰익스피어가 동성애자이거나 양성애자였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더욱 용인되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다.

19세기 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영국과 유럽에서 동성애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퇴폐적 동성애를 다룬 그의 작품들은 당시에 타락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동성애 혐오자들의 집중적 비난을 받았다. 와일드의 단편소설 『더블유 에이치 씨의 초상』(The Portrait of Mr. W. H.)에 등장하는 셰익스피어는 와일드 자신을 이상화시킨 인물이다. 즉,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나이 많은 극작가가 극단에서 여자 역을 맡은 윌리 휴스(Willie Hughes)라는 소년배우에 대한 사랑의 산물로서, 소네트시집을 헌정했던 Mr. W. H.가 바로 그 소년 배우라는 것이다. 와일드는 소네트에 나타나있는 Will(소네트 135, 143)과 Hues(소네트 20)가 Willie Hughes를 동음이의어의 익살(pun)로 표현한 것이라는 내용으로 소설을 썼다. 와일드는 소네트에 관한 전기적 관점을 정말로 믿고 있었지만, 그것을 지지해줄 강력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진부한 세속적인 이야기를 아름다룬 소설의 우월함으로 그려내려고 했으며, 그 안에 자기 자신을 투영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와일드가 동성연애 혐의로 기소되자 그는 법정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언급하며 자신이 연관된 바는 “감히 이름 부를 수 없는 사랑(the love that dare not speak its name)"이라고 하며 스스로를 변론했다. Richard Ellmann, Oscar Wilde (London, Penguin Books, 1988), 435, 422.
   

“금세기에 ‘감히 이름 부를 수 없는 사랑'은 자기보다 더 젊은 남자에 대한 연장자의 위대한 사랑으로서, 예를 들면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사랑, 플라톤 철학의 바탕을 이루는 사랑, 미켈란젤로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 드러나 있는 그런 위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완벽하고 순수한 정신적 사랑이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와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예술 작품에 충만 되어 있으며, 또한 나의 그 두 통의 편지에도 충만되어 있다. 금세기에 와서 그 사랑은 오해되고 있는데, 그 오해의 정도가 너무 심하여 그 사랑은 ’감히 이름 부를 수 없는 사랑‘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런 사랑 때문에 이 법정의 피고석에 있다. 그 사랑은 아름답고, 그 사랑은 순수하며, 그 사랑은 가장 고상한 형태의 사랑이다. 그 사랑에 부자연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사랑은 지성적인 것으로서 두 남자 중 연장자는 지성을 지니고 있고 그 보다 어린 남자는 그 앞에 놓인 삶의 온갖 기쁨과 희망과 매력을 지니고 있을 때, 그 두 남자 사이에 반복해서 존재한다. 그 사랑은 그런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은 비웃으며, 종종 그런 사랑을 이유로 사람에게 형틀을 씌우기도 한다. 
 

"The Love that dare not speak its name" in this century is such a great affection of an elder for a younger man as there was between David and Jonathan, such as Plato made the very basis of his philosophy, and such as you find in the sonnets of Michelangelo and Shakespeare. It is that deep, spiritual affection that is as pure as it is perfect. It dictates and pervades great works of art like those of Shakespeare and Michelangelo, and those two letters of mine, such as they are. It is in this century misunderstood, so much misunderstood that it may be described as the "Love that dare not speak its name," and on account of it I am placed where I am now. It is beautiful, it is fine, it is the noblest form of affection. There is nothing unnatural about it. It is intellectual, and it repeatedly exists between an elder and a younger man, when the elder man has intellect, and the younger man has all the joy, hope and glamour of life before him. That it should be so, the world does not understand. The world mocks at it and sometimes puts one in the pillory for it."            

분명히 세익스피어라는 이름은 영향력이 있었고, 와일드에 대한 극심한 편견에 반대하는 협력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와일드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 드러난 시인의 청년에 대한 사랑은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라고 주장하였다. 와일드의 동성애적 해석은 현재까지도 동성애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동성애의 해방 운동에서 그들 주장의 근거로 전용하고 있다. 에릭 파트리지(Eric Partridge)는 동성애자들이 그들의 동성애 해방 운동을 위해 소네트 20을 이용한다고 비난하며 소네트에 드러난 시인의 청년에 대한 사랑은 동성애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Partridge, Eric. Shakespeare's Bawdy: A Literary and Psychological Essay and a Comprehensive Glossary. (London; New York : Routledge, 1968) 11, 15
 

      
대부분의 이성애자들처럼, 나는 셰익스피어가 동성애자였다는 비난이 최악의 경우, 법적인 의미에서 사소한 것에 불과하며 기껏해야 그러한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 . 셰익스피어가 동성애자였다는 비난은 1889년에 한 동성애자 즉, 오스카 와일드에 의해 처음 야기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뒤에 다른 동성애자인 사무엘 버틀러(Samuel Butler)에 의해 다시 재기되었다. . . 동성애자들은 셰익스피어를 동성애자 목록에 추가하여 셰익스피어를 자신들의 이상한 행위의 광고물로 이용하기 위해 전력을 다 해 왔다. 그들은 셰익스피어가 그들과 같은 동성애자들 중의 한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소네트 20을 인용해 왔다.             


또한 알프레드 하비지(Alfred Harbage)도 소네트에 대한 동성애 독해가 행해지는 것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며 안타까워했다. Harbage, Alfred. Shakespeare Without Words, and Other Essays. (Harvard UP, 1972) 75


그 이상한 사랑에 대한 문제는 그 이상한 사랑이 소네트들에 나타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에 관심이 있던 오스카 와일드와 다른 몇몇의 사람들에 의해 공표되었다. 그 결과 소네트에 내포되어 있는 정서에 대해 올바른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동성애자들은 와일드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만약 와일드의 견해가 주는 위안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몰인정한 태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 셰익스피어의 이성애를 너무 과도하게 옹호하면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이성애가 지금까지 의심받아 왔다는 것을 광고할 수 있을 뿐이다.

 
III. 동성애적 영화에 이용된 소네트

셰익스피어를 동성애의 수호성인으로 적용시킨 것은 소네트를 더욱 창조적인 부응물로 만들어내며 계속되었다. 1985년 영국 데릭 자만(Derek Jarman)감독의 <천사의 대화(The Angelic Conversation)>는 천천히 움직이는 사진 이미지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병치시키는 설정으로, 주로 동성애의 모습들과 불투명한 풍경으로 이루어져있다. 소네트의 126번까지의 전반부 중에서 아름다운 친구(Fair Friend)와 관련이 있는 14편의 시가 낭송되는 신비한 분위기의 관현악 음악이 흐르는 단편 영화이다. http://www.imdb.com
 소네트를 낭송하는 여배우 주디 덴치(Judi Dench)의 목소리가 영화에 흘러나올 때에는 마치 영화가 여성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유일하게 젊은 남성들에게만 집중하면서, 읽혀지는 시와 장면은 동성애의 틀에 맞추어져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두 남자는 자신의 욕망을 따라 여행을 하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성행위가 노골적으로 묘사된 X급과는 다르다. 또한 내용면에서 소네트와 영화의 장면이 일치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젊은 청년이 횃불을 들고 비추는 장면은 아름다운 친구(Fair Friend)의 빛남을 칭송하는 부분과 연결되어 진다. 소네트 94번 ‘해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서(They that have power to hurt)'이 낭송되는 장면에서는 한 남자가 길게 늘어뜨린 옷과 왕관을 쓰고서 내려다보는듯한 몸짓을 하고 다른 한 남자는 그의 무릎과 팔에 공손히 입을 맞추고 있다. 어떠한 대화나 줄거리가 있지 않지만, 소네트 시의 내용을 시각적 이미지로 과장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데릭 자먼 감독이 동성애를 그려내는 영화의 세계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Angelic conversation)
Considering how evocatively the film's images and sounds counterpoint Shakespeare, it may come as a surprise to learn that the sonnets were a fairly late addition. Jarman's initial inspiration was to do a film with his close friends, music and life partners John Balance and Peter Christopherson, who created the alternative band Coil. Their extraordinary score moves effortlessly across genres, suggesting everything from classical to punk. Working with Jarman, they also brilliantly incorporate natural 'found sounds' like a ticking clock, running water, the crying of birds, a man panting, and industrial noise. During a few sequences, Jarman also uses the plaintive 'Sea Interludes' from gay composer Benjamin Britten's 1945 operatic masterpiece, Peter Grimes.
Britain's Conservative Party felt that they also had something of an "angelic conversation" going, with heavenly forces leading them to landslide victories in 1983 and 1987 under Margaret Thatcher, Prime Minister from 1979 till 1990. Jarman despised the Conservatives' hypocrisy, touting "free market" and "pro-family" values, while jackbooting the poor and working class. It was an especially volatile time for GLBT people, with the AIDS epidemic decimating not only its leaders and artists, but everyone. Jarman was diagnosed as HIV-positive in late 1986. Symptomatic of that era — when cultural conformity trumped the other Conservative value, individual liberty — was the passage of Section 28 of the Local Government Act of 1988. It demanded that a local authority "shall not intentionally promote homosexuality," and referring to same-sex couples' loving commitment "as a pretended family relationship." Educators were afraid of discussing gay issues, even bullying, with students for fear of losing state funds; and many groups closed or limited their activities. But such self-censorship was the opposite of the new gay rights direct action groups like OLGA and OutRage!, of which Jarman was a vocal supporter. The despicable Section 28 was not rescinded in full until 2003.
Jarman wanted a woman as reciter, in part to balance the high testosterone level of the poetry, and his all-male cast. Dench's delivery is perfect both for Shakespeare and Jarman. It's a voice performance with intonations subtly but clearly revealing both the poems' poetic and emotional structures; it's all cool surface but you can feel the heat waiting to erupt at any time — just as you can see it on screen, both in Williamson and Reynold's erotically charged performances, and in the imagery. A flaring torch, or blinding light, is never far away.
Shakespeare addresses over eighty percent of the work — including Sonnet XVIII: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 to a beautiful young man (with attitude) who has enflamed the poet.
영국 남부의 웨일즈에 위치한 볼케이노 극장에서 제작한 동작 연극인 <사랑(L.O.V.E.)>에서도 <천사의 대화(The Angelic Conversation)>와 매우 비슷한 형식으로 소네트를 표현하는 작품을 공연하였다. 1992년에 초연되었고 1993년에는 타임 아웃 극장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2012년에 새로운 세대에 의해 재창작되었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 세 사람의 배우가 출연하며 소네트를 잔잔히 낭독하기보다는 오히려 짧게 고함지르는 장면이 이어진다. 매우 에너지 넘치는 격렬한 댄스와 야만적으로 보이는 무술과 같은 동작이 독특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극이 시작될 때, 두 남자배우는 매우 강렬한 입맞춤을 하는데 분명히 단순한 친구관계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신체 접촉을 하는 동안 배우들이 서로 뒤엉켜서 남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http://www.volcanotheatre.co.uk
   
자먼 감독과 볼케이노 극단이 셰익스피어의 동성애적 가능성을 탐구했었다면, 윌리엄 보이드(William Boyd)는 소네트의 구성을 둘러싼 상황에 관한 전기적 드라마 <수치스런 낭비(A Waste of Shame)>를 각색하였다. ‘셰익스피어와 소네트에 관한 미스테리(The mystery of Shakespeare and his sonnets)'라는 부제를 붙이며 셰익스피어의 성적 지향을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2005년 BBC의 Shakespeare Retold 시즌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죤 메케이(John Mckay)가 감독을 맡았다. http://www.imdb.com
 이 영화에서 셰익스피어는 이국적인 검은 여인을 유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성적 아름다움을 지닌 젊은이에게 매혹된다. 여기서 셰익스피어는 젊은이(Fair Friend)에게 사랑을 느끼며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지만, 결코 실재로 동성애적인 성관계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귀족풍의 젊은이를 이상적으로 대하는 반면에 무어인 혈통의 프랑스인 검은 여인과는 매우 야한하며 강압적인 관계를 갖는다. 이 영화에서 여인을 매춘부로 그려내는데 셰익스피어는 그녀를 경멸하기도 한다.
   (윌리엄 보이드의 언급 추가)
From the outset of any reading of the sonnets there is an inevitable and natural tendency to link the fair youth with the dedicatee: 'Mr W.H.', the 'only begetter'.  Many candidates have been suggested over the years but the academic concensus focuses mainly on two: the Earl of Southampton and the Earl of Pembroke.  The arguments for both are strong: there is a biographical Shakespearean connection with each man and the dates fit (though Southampton is older than Pembroke).  The Southampton case, however, requires a fair bit of casuistry to hold securely as The Earl of Southampton’s real name was Henry Wriothesley – which, one would have thought, would make him 'Mr H.W.' But no, the Southamptonians argue – Shakespeare was trying to disguise the real identity of the dedicatee, and so swapped the initials round. This might just be acceptable if the Pembrokians didn’t hold the ace in their hand. Pembroke’s real name is William Herbert – so: no initial-juggling required.  The other fact that favours William Herbert is that it makes the composition of the sonnets occur later in Shakespeare’s life. The Shakespeare-Pembroke connection means that Shakespeare was in his thirties and forties when the sonnets were written – a middle-aged man by seventeenth century standards – approximately twice Mr W.H.’s age. Again, internal evidence in the sonnets makes the poet seem substantially older than the fair youth ('My glass shall not persuade me I am old'). If it was Southampton then he and the poet would be coevals, young men together – it just doesn’t work or read as plausibly.
And so our characters assemble: William Shakespeare, middle-aged, successful, famous, very unhappily married, sexually stirred and enthralled by William Herbert, the talented and epicenely handsome son of the Earl of Pembroke. But love – or lust – was requited not with the 'lovely boy' but with Shakespeare’s 'black beauty' – a prostitute available for anyone in Southwark with a shilling to spare.  These identifications are, though inevitably conjectural, highly plausible all the same, and can be stringently defended from the scant evidence that exists. And this starting point is all the licence that the imagination requires in the making up of a story that unites these three people in a disturbingly passionate and fraught love-triangle.

IV. 소네트의 공연예술 변주

베를린 앙상블(Berliner Ensemble)과 함께 로버트 월슨(Robert Wilson)이 연출한 <셰익스피어 소네트>(Shakespeare's Sonnets)는 아방가르드 거장의 독특한 연출과 미국인 싱어송라이터인 팝스타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의 아름다운 음악과 더불어 베를린 앙상블의 밀도 있는 연기력으로 대단한 화재를 모았다. 25편의 소네트를 무대화한 음악극이며 2009년 베를린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2015년에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성황리에 내한공연을 가진 바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레퍼토리 앙상블로 공연되어 라이브 뮤직 비디오를 감상하는 효과를 취하고 있다.
이 작품의 시각적 효과가 매우 독특하면서도 이상할 정도인데, 검은 의상과 마치 광대를 연상하게 하는 하얀 얼굴들은 창백한 빛의 조명과 크게 대조를 이루며 초현실적인 배경에서 소네트가 여러 번 반복되며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의 음악과 음향은 꿈속 같은 효과를 더해준다. 웨인라이트는 여러 장르의 음악이 연상되는 파스티셰 기법으로 작곡하였다. 소네트 29를 절망과 희망의 내용을 화음이 어우러지는 고전적인 자장가의 멜로디처럼 만들었으며 소네트 66은 어둡고 일그러진 캬바레식 음악과도 같고, 소네트 23은 팝 펑크음악을 연상하게 한다.

(무대에 관한 세부사항)

웨인라이트의 다방면에 걸친 음악들에 대응하여 윌슨은 각각의 소네트마다 다르게 재단된 아찔한 무대 공간을 만들어 낸다. 소네트 23은 거대한 주유 펌프기 3대가 있는 하얀 방에서 진행됩니다.

이 연극에서 남자 배우들은 긴 드레스를 차려입고 여배우는 정장을 입는데, 배역도 성을 바꾸어 연기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연기한 배우는 유르겐 홀츠(Jürgen Holtz)가 셰익스피어 역할은 앤젤라 슈미드(Angela Schmid)가 맡는 등 모든 배역과 연기하는 배우의 성별을 바꾼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동성애적 욕망을 확대해서 표현 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음악을 작곡한 웨인라이트는 잘 알려진 동성애자들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로서, 단지 음악 때문만은 아닌 이 작품의 기획 의도와 일치되는 인물로 추론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셰익스피어 소네트 중에서도 동성애적 해석이 강한 시들을 기반으로 의도된 공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윌슨 감독은 연극 출연자들에게 동성애적인 의상을 선택한 것은 소네트의 어휘들을 구현해내는 화신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V.결론

일단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출판되어지도록 의도한 사랑의 시집이 아니었다. 소네트의 겉으로 보여 지는 내용에서 수수께끼 같은 어두운 여인이나 아름다운 청년에 대한 한 남자의 욕망에 관해서 친구들 사이에 퍼졌던 야한 유머가 포함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결혼생활에서 떠나고자 했을 것이라는 추론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게이 후원자를 위해 개론서를 썼다는 가설을 내기도 했다. 또한 단순히 한 남성이 기막히게 잘생긴 친구를 만나게 되어 그들 사이의 정신적 사랑과 ‘브로맨스’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 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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